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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 (공민왕, 이성계, 신진사대부)

by kiri17 2026. 3. 1.

 

솔직히 저는 조선시대 역사는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고려가 어떻게 무너지고 조선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냥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해서 나라 세웠다' 정도만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직접 자료를 찾아보니 고려 말기는 단순히 한 왕조가 망한 게 아니라, 권력을 독점한 소수 세력과 개혁을 꿈꾸던 신진 세력의 충돌이 만든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공민왕의 개혁 시도부터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까지, 조선 건국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습니다.

공민왕의 개혁과 좌절

고려 말은 원나라의 간섭이 극심했던 시기였습니다. 원 간섭기(元干涉期)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고려의 왕위 계승에 원나라 황실이 직접 개입하고, 동북면 지역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해 고려 영토를 직접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여기서 쌍성총관부란 원나라가 고려 영토 일부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세운 행정기구를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나이에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강릉대군, 훗날의 공민왕은 10년간 원나라에서 생활하며 원나라의 쇠퇴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흥미롭게 느낀 건, 공민왕이 단순히 꼭두각시 왕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는 반원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목표가 기철 일당 제거였습니다. 기철은 원나라 황후 기황후의 오빠로 그 권세를 등에 업고 고려에서 온갖 횡포를 부리던 인물이었습니다. 공민왕은 원나라가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기철을 제거하고, 이어서 원나라에 빼앗겼던 쌍성총관부까지 되찾았습니다. 이때 활약한 인물이 바로 이자춘과 그의 아들 이성계였습니다.

그런데 공민왕의 개혁은 계속되는 외세 침략으로 좌절됩니다. 남쪽에서는 왜구가, 북쪽에서는 홍건적이 수십 차례 침공해 왔습니다. 특히 홍건적 2차 침공 때는 20만 대군이 수도 개경까지 위협해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란을 떠나야 했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이 과정에서 최영과 이성계는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적을 물리치며 고려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노국공주의 죽음과 신돈의 개혁

공민왕에게는 평생의 반려자인 노국공주가 있었습니다. 원나라 황실 출신인 그녀는 공민왕이 원나라에서 만난 영혼의 짝이었죠. 저는 역사책에서 왕과 왕비의 사랑 이야기는 대부분 과장되거나 미화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관계는 달랐습니다. 노국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자 공민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국고를 털어 성대한 장례를 치르고 그녀의 초상화를 보며 대화하는 등 실의에 빠져 개혁 의지마저 잃어버린 겁니다.

모든 것을 잃은 공민왕은 마지막으로 승려 신돈에게 고려 개혁을 맡겼습니다. 신돈은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이라는 기관을 설치해 토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전민변정도감이란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만든 특별 기구를 의미합니다. 이 정책으로 강제로 노비가 된 양민들이 신분을 되찾았고, 백성들 사이에서 신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신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성균관을 재정비하고 과거제도를 개혁해 신진 사대부를 양성했습니다.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란 성리학을 바탕으로 고려의 폐단을 개혁하려던 새로운 유학자 관료 집단을 뜻합니다. 하지만 불교 출신인 신돈을 싫어하던 유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비리와 역모 소문이 퍼졌고, 결국 공민왕은 신돈을 처형했습니다. 신돈의 죽음으로 고려 개혁은 다시 좌절됐고, 공민왕은 점점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다가 결국 자제 위에게 시해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인임의 집권과 정도전의 등장

공민왕이 시해당한 후 권력을 잡은 인물은 이인임이었습니다. 그는 10살 어린 우왕을 왕위에 앉히고 고려의 정권을 장악했죠. 권문세족 출신인 이인임은 공민왕과 신돈이 추진했던 개혁 조치들을 모두 무효화하고, 자신을 포함한 권문세족 위주로 인사를 개편했습니다. 뇌물과 청탁 정치가 다시 만연했고, 고려는 공민왕 이전의 부패한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외교였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원나라가 쇠퇴하고 명나라가 등장하는 대전환기였습니다. 공민왕은 명나라에 사대했지만, 이인임은 권문세족의 전통대로 북원과 다시 친해지려 했습니다. 심지어 명나라 사신을 암살하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죠. 이런 친원정책에 강력히 반발한 세력이 바로 신진 사대부였습니다. 성리학을 중요시하던 이들은 한족의 명나라를 긍정적으로 보았고, 몽골족의 원나라를 오랑캐라 부르며 싫어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때 이인임에게 정면으로 맞선 인물이 정도전이었습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인 정도전은 목은 이색의 제자로, 성균관 급제 후 공민왕의 신임을 받던 관료였습니다. 하지만 이인임이 원나라 사신 접대를 명령하자 이를 거부하고 왕명 불복종으로 유배형에 처해졌죠. 제가 생각하기에 이 대목이 정도전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권력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킨 거죠.

6년간 전국을 떠돌며 40대가 된 정도전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고려를 바꿀 수 없다는 걸요. 그래서 나라를 다스릴 힘을 가진 사람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성계였습니다. 왜구와 홍건적, 원나라 군대를 물리치며 고려의 영웅이 된 무장 이성계.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권력이란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민왕은 개혁을 꿈꿨지만 권문세족의 저항과 외세의 침략,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신돈은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국 권력의 유혹에 빠지거나 정적에게 제거당했죠. 이인임은 권력을 쥐었지만 오직 권문세족의 이익만 챙겼습니다. 결국 고려가 망한 건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고 백성을 착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권력을 나눠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 했다면 고려는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이 건국되는 과정은 단순히 왕조가 바뀐 게 아니라, 낡은 권력 구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6_ZwKyzOhw&list=PLag20yJERjFqstrKdVYnpxnzSga8m2vtz&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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