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가 서로를 죽이는 왕자의 난이 한창일 때, 한 왕자는 궁궐에서 도망쳐 숨어 지냈습니다. 바로 이방과, 훗날 정종대왕이 되는 인물입니다. 당시 저도 처음 이 기록을 접했을 때 의아했는데, 권력 다툼의 중심에서 왜 도망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이 사람은 애초에 왕이 되고 싶은 욕심 자체가 없었다는 게 명확해 보였습니다.
왕자의 난 당일, 그는 어디에 있었나요?
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한 1398년 음력 8월 26일, 이방과는 소격서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소격서란 조선시대 천문·제사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주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입니다. 그는 아버지 태조 이성계의 병이 낫기를 빌기 위해 그곳에 있었습니다. 동생 이방원이 개경 시내에서 정도전과 이방석 세력을 제거하는 유혈 사태를 벌이는 그 순간, 정작 이방과는 부모의 쾌유를 기원하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조선 초기에는 적장자 계승 원칙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지만, 신권 중심의 정치 체제를 지향하던 정도전은 서자인 이방석을 왕세자로 옹립했습니다. 여기서 적장자란 적실 부인, 즉 정식 왕비가 낳은 맏아들을 뜻하는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이방과가 바로 그 적장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방과는 세자 자리에 눈독을 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방원의 부름을 받았을 때 "형님이 직접 세자가 되십시오"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제가 역사 기록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건, 이방과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버지 병만 걱정했다는 점입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권력 다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그의 태도는, 당시 왕족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이례적이었을 겁니다.
이방원은 왜 직접 세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명분은 "서자가 적장자를 제치고 세자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도 적장자가 아니었기에, 이방과를 건너뛰고 자신이 세자가 되면 명분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대목에서 이방원의 정치적 계산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당시 정치 상황을 보면 이방원의 고민이 이해됩니다. 태조 이성계는 여전히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다른 왕자들과 종친들도 각자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방원이 직접 세자가 되는 순간, 이들이 연합하여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컸습니다. 여기서 사병이란 개인이 사적으로 보유한 군대를 의미하는데, 조선 초기에는 왕족과 공신들이 각자 사병을 거느리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방원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이방과를 세자로 앉히면:
- 적장자 원칙을 지켜 명분 문제 해결
- 태조 이성계가 아들 이방과를 공격할 이유 제거
- 이방과 에게는 적자가 없어 결국 왕위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이방과의 자녀 구성입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지만 정실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가 없었습니다(출처: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왕위 계승 원칙상 서자는 왕위 계승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이방원은 이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이방과가 왕위에 오른 뒤 2년 만에 이방원에게 선위 하게 되는데, 이는 이방원이 처음부터 예상한 시나리오였습니다.
정종이라는 사람, 정말 마음이 넓었던 걸까요?
저는 정종의 행적을 보면서, 이 사람은 정말로 권력욕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선 건국 과정에 아버지를 도왔고, 왕자의 난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결국 왕위에까지 올랐지만, 그 모든 과정이 본인의 의지라기보다 상황에 떠밀린 결과였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정종이 동생 이방간을 끝까지 보호했다는 점입니다. 2차 왕자의 난 때 이방간이 이방원에게 패한 뒤에도, 정종은 그를 죽이지 않고 귀양 보내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정치 상황에서 패배한 왕족은 대부분 제거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정종의 인자한 성품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제 생각에 정종은 외모적으로 멋진 사람이라기보다,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을 겁니다. 이방원처럼 무력과 권모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인물도 정종만큼은 건드리지 않았으니까요. 정종은 자신이 원하던 것들 - 평온한 삶, 가족의 안녕, 형제간의 우애 - 을 지키기 위해 왕위에 올랐지만, 그 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과 2년 만에 동생에게 왕위를 넘긴 게 아닐까 합니다.
정종의 재위 기간은 짧았고 뚜렷한 업적도 없었지만, 그의 심성만큼은 역사에 기록될 만큼 선량했습니다. 이방원 같은 정치적 야심가가 보기에도 정종은 착한 형이었고, 그래서 이방원은 형을 왕으로 세우면서도 결국 자신이 권력을 쥘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겁니다. 어쩌면 정종은 자신의 선량함이 동생의 정치적 도구로 쓰인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가족 간의 피를 더 이상 흘리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요.
저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정종 같은 인물이야말로 진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권력을 움켜쥐는 사람보다,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더 대단하니까요. 당시 그를 직접 만났다면, 외적인 카리스마보다는 내면의 평온함과 깊은 효심에 감동받았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7Ee_Nb56hU&list=PLag20yJERjFqstrKdVYnpxnzSga8m2vtz&index=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