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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마지막 (아관파천, 을사늑약, 경술국치)

by kiri17 2026. 3. 16.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을사늑약은 조약 형식을 갖춘 합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한 상태에서 강제로 체결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 사건을 공부하면서, 한 나라의 주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고종의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선포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당한 후, 경복궁은 고종에게 감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했습니다. 여기서 아관파천이란 조선의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을 의미하며,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외국 공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국가적 치욕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일본의 노골적인 압박 속에서 고종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당시 고종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나라를 지키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897년 2월 고종은 1년 만에 궁궐로 돌아왔고, 같은 해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한 것은 자주 국가임을 대내외에 천명하려는 의도였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은 근대화 개혁도 추진했습니다. 경인선·경부선 철도 부설, 전화와 전신 도입, 한성은행 설립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열강의 이권 침탈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열강의 이권 침탈과 러일전쟁

일반적으로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가 조선을 보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러시아는 금 채굴권, 삼림 벌목권 등 각종 이권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 일본·미국·영국 등 열강들도 경쟁적으로 대한제국의 자원을 빼앗아갔습니다. 제가 이 시기 역사를 살펴보면서 느낀 건, 외교권(外交權)이 얼마나 중요한지였습니다. 외교권이란 국가가 대외적으로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했고, 일본이 승리하면서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세력권에 들어갔습니다. 전쟁 승리 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한 압박을 본격화했습니다. 당시 열강들은 상호 간 이해관계에 따라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했습니다(출처: 동북아역사재단). 미국은 필리핀, 영국은 인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대가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밀약을 맺었던 것입니다.

제 생각엔 이 시기 대한제국이 처한 상황은 단순히 한 나라의 비극을 넘어, 약소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파견

1905년 11월 17일,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한 가운데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습니다. 고종은 조약 체결을 끝까지 거부했지만, 이완용·박제순·이지용·이근택·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乙巳五賊)'이 조약에 찬성하면서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했습니다.

외교권을 빼앗긴다는 건 단순히 조약 하나를 잃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대한제국이 더 이상 독립국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모든 외교 업무를 일본이 대행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저는 역사 기록을 보면서, 왕이 반대했는데도 신하들의 배신으로 나라가 무너지는 과정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실감했습니다.

고종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비밀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이상설·이준·이위종 세 명의 특사가 파견되었으나, 이미 외교권을 잃은 상태였기에 회의장 출입조차 거부당했습니다. 이준 열사는 헤이그에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했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은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습니다. 주권국가의 황제가 외세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순종 즉위와 경술국치

1907년 순종이 대한제국의 두 번째 황제로 즉위했지만, 그는 실권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은 같은 해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고, 이에 저항한 군인들은 진압당했습니다. 하지만 해산된 군인 중 일부는 의병에 합류하거나 훗날 독립군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체계적으로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란 일본이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세운 국책회사로, 토지 매입과 농업 이민을 명분으로 조선의 경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기구였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년에 일어난 국치(國恥), 즉 '경술국치'가 발생했습니다. 일본은 '한일 강제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을 완전히 병합했습니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 순종의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조약을 체결했고, 519년간 이어온 조선왕조는 막을 내렸습니다. 순종실록의 마지막 페이지는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라는 비극적인 문구로 끝을 맺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역사적 사실들을 공부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약 고종이 더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더라면, 혹은 신하들이 권력 앞에서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MBC 드라마 '궁'은 조선왕조가 현대까지 이어진 세계관을 그렸는데, 만약 대한제국이 독립을 유지했다면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땠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당시 조선이 처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고종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왕이 외국 공사관으로 도망쳐야 했던 암울한 시대는 단순히 왕권의 강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힌 비극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느낀 건, 주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It7bbe__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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