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제가 한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느낀 건데요, 우리가 지금 쓰는 국어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저도 솔직히 그냥 '원래부터 있었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볼 이야기였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 같은 시절에 목숨 걸고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제대로 알고 나니까 한글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주시경 선생과 '한글'이라는 이름의 탄생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한글'이라는 명칭, 이게 사실 1913년에야 생긴 말이라는 거 아세요?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만든 단어입니다. 그전에는 '배달 말글', '한나라 글'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한나라 글'을 줄여서 '한글'이 됐고, 나중에는 '하나, 크다, 바르다'라는 의미까지 더해졌죠.
제가 이 부분에서 특히 가슴이 아팠던 건, 주시경 선생이 평생 우리말 사전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는 겁니다. 1910년까지만 해도 우리말 사전이 단 한 권도 없었어요. 언어학에서 '사전(辭典)'이란 단순히 단어를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물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사전이 있어야 그 언어가 제대로 된 언어로 인정받는다는 뜻이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위기 속에서 주시경 선생은 우리말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1911년, 제자들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인 '말모이'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말모이'란 '말을 모은다'는 순우리말로, 지금의 사전 편찬 프로젝트 같은 개념입니다(출처: 국립국어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업은 불과 4년 만인 1914년 주시경 선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조선어학회의 재도전과 표준어 제정
주시경 선생이 돌아가신 후 15년 동안 사전 편찬 작업은 완전히 멈췄습니다. 우리말은 점점 잊혀가고,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은 갈수록 심해졌죠. 그러다 1929년,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하면서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극로라는 분이 합류하는데, 이분이 정말 대단한 분이었어요.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유학파 엘리트였는데, 유럽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기 말 대신 영어를 쓰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일본어만 쓰게 되겠구나' 싶어서 귀국하자마자 모국어를 지키는 일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죠.
조선어 연구회가 처음 마주한 문제는 '어떤 말을 사전에 넣을 것인가'였습니다. 당시 조선은 지역마다 쓰는 말이 천차만별이었어요. 같은 뜻이어도 지역별로 완전히 다른 단어를 썼고, 소통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지역별 언어 변이를 '방언(方言)'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방언이란 표준어가 아닌 특정 지역에서만 쓰이는 토착어를 뜻합니다.
그래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정말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당시 회원 대부분이 학교 선생님들이었는데, 학생들한테 여름방학 숙제로 '고향 사투리 모아 오기'를 내준 겁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중등학교 이상 학생들이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서 그 지역 말을 수집해 오는 방식이었죠. '시골말 캐는 잡책'이라는 공책까지 만들어서 전국 방방곡곡의 말을 모았습니다.
수많은 회의 끝에 1년 9개월 만에 드디어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발간됐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전국 각지에서 제멋대로 쓰이던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표준어를 정한 겁니다(출처: 한글학회). 제가 이 부분 공부하면서 느낀 건, 이게 단순한 학술 작업이 아니라 정말 민족의 언어를 살리는 독립운동이었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사전 원고의 기적
1936년 10월 28일, 조선어학회는 '조선의 표준말 모음' 발표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날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축사를 맡으셨는데, "조선 민족에게 남은 것은 조선어뿐이니, 그 보급과 발전에 힘써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훈훈한 분위기는 일제 경찰에 의해 중단됐습니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학술단체가 아니라 위험한 민족주의 단체로 규정하고 감시하기 시작했어요. 형사들이 매일같이 사무실을 드나들며 회원들을 감시했고, 조선어학회는 단체를 지키기 위해 조선신궁 참배나 친일 단체 가입 같은 굴욕적인 일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을 때 정말 화가 나더라고요. 우리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이런 수모를 겪어야 했다니.
1942년 3월, 함경남도에서 한복 입고 한국말 쓴 청년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청년의 조카 일기장에서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다'는 문장이 발견됐는데, 당시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했으니 일본어 쓰고도 혼났다는 건 조선어를 가르친 교사가 있다는 뜻이었죠. 일제는 이를 빌미로 조선어학회 회원 정태진 선생을 체포하고 20여 일간 극심하게 고문했습니다.
결국 1942년 10월 1일,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무실을 급습해 막바지 작업 중이던 사전 원고를 모조리 압수했습니다. 총 33명의 회원이 검거됐고, 심한 고문을 받았어요. 제가 한글 공부하면서 이 내용을 알게 됐을 때,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제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이 한글 하나하나에 이런 피와 땀이 배어 있었다니.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면서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석방된 거죠. 그리고 광복 24일 후인 9월 8일, 서울역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경성역 창고에 조선말을 풀이한 원고 뭉치가 있다"는 소식이었어요. 압수됐던 사전 원고가 재심을 위해 서울로 옮겨졌다가 그대로 버려져 있었던 겁니다.
원고를 되찾은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다시 붓을 들었고, 1929년에 시작된 사전 편찬은 18년 만인 1947년에 '조선말 큰사전' 제1권을 출간했습니다. 이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꾼 조선어학회는 1957년 전 6권의 '큰사전'을 완간했고,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쓰는 국어사전의 시작입니다.
제가 한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이런 역사를 알게 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무분별한 줄임말, 외래어, 외국어가 넘쳐나잖아요. SNS만 봐도 뭔 소린지 모를 신조어 천지고요. 물론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우리 토박이말, 순우리말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문, 방송, 출판, 공공기관, 학교 교과서 등 모든 곳에서 조금씩이라도 우리말을 더 쓰려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나브로, 천천히 하다 보면 달라질 거라고 믿어요. 목숨 걸고 우리말을 지킨 분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한 마디 한 마디 더 신경 써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