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3 정약용 실학자 (거중기, 수원화성, 마과회통) 정약용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로, 건축·의학·농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정조의 신임을 받으며 수원 화성 건설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불과 2년 9개월 만에 완성해 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는 처음 이 기록을 접했을 때 현대 공법으로도 쉽지 않을 공사를 그 시대에 어떻게 이뤄냈는지 정말 놀라웠습니다.천주교 박해 속에서도 지켜낸 개혁 파트너십정조 시대, 천주교는 조선에서 가장 위험한 종교로 낙인찍혀 있었습니다. 1791년 진산 사건에서 정약용의 외사촌 형 윤지충이 부모의 신주를 불태웠다는 이유로 참수당했는데, 이는 천주교에서 조상 제사를 우상 숭배(偶像崇拜)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상 숭배란 신 이외의 대상을 신처럼 섬기는 행위를 뜻하는 종교 용어입니다... 2026. 3. 17. 한글 사전의 역사 (주시경, 조선어학회, 말모이) 요즘 제가 한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느낀 건데요, 우리가 지금 쓰는 국어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저도 솔직히 그냥 '원래부터 있었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정말 눈물 없이는 못 볼 이야기였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암흑 같은 시절에 목숨 걸고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분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한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제대로 알고 나니까 한글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주시경 선생과 '한글'이라는 이름의 탄생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한글'이라는 명칭, 이게 사실 1913년에야 생긴 말이라는 거 아세요?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만든 단어입니다. 그전에는 '배달 말글', '한나라 글'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한나라 글'을 줄여서 '한글'이 .. 2026. 3. 17. 독립운동의 역사 (을사늑약, 안중근 의사, 3.1 운동)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역사책에서 배운 35년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교과서 속 한 줄로만 기억했던 일제강점기가 518년이나 이어진 조선왕조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고작 40년도 안 되는 침략의 역사가 어떻게 반세기에 가까운 왕조를 지워버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 암울한 시간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습니다.국권 침탈의 시작, 을사늑약부터 경술국치까지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조선의 운명을 바꾼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습니다. 여기서 을사늑약이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는 조약으로, 정식 명칭은 '을사조약'이지만 강제로 맺어진 불법 조약이라는 의미에서.. 2026. 3. 17. 조선왕조의 마지막 (아관파천, 을사늑약, 경술국치)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넘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을사늑약은 조약 형식을 갖춘 합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한 상태에서 강제로 체결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 사건을 공부하면서, 한 나라의 주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실감했습니다.고종의 아관파천과 대한제국 선포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당한 후, 경복궁은 고종에게 감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했습니다. 여기서 아관파천이란 조선의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을 의미하며,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외국 공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국가적 치욕으로 여겨집니다.하지만 일본의 .. 2026. 3. 16. 흥선대원군과 고종 (세도정치, 권력투쟁, 쇄국정책) 솔직히 저는 운현궁을 처음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도 흥선대원군을 단순히 '쇄국정책을 고집한 보수 인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현궁의 작은 전각들과 궁궐을 잇는 전용 문 터를 보면서, 이곳에서 펼쳐졌던 조선 말기 권력 투쟁의 민낯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될 수 없었던 남자가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그 아들과 평생 앙숙으로 살다 간 이야기는 단순히 역사책 속 기록이 아니라 한 가문의 비극이자 나라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습니다.세도정치 종식과 대원군의 개혁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조선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60년간 이어진 세도정치로 왕권은 땅에 떨어졌고, 안동 김 씨를 비롯한 외척 가문들이 조정을 좌지우지하며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여기서 세도정치란 특정 가문이 왕실의 외척이.. 2026. 3. 16. 철종의 개혁 (세도정치, 삼정문란, 농민봉기)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에 정작 왕은 무능하다고 기록되고, 권력은 신하에게 있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하면 강력한 왕권을 떠올리지만, 제가 역사를 들여다보니 실상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철종 시기는 안동 김 씨 세도정치로 왕권이 사실상 무너진 대표적 사례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갔습니다.안동 김 씨의 왕실 장악과 철인왕후 간택순원왕후는 당시 20세였던 철종의 혼인을 위해 금혼령(金婚令)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금혼령이란 왕실에서 왕비 간택을 위해 일정 기간 일반 백성의 혼인을 금지하는 명령을 의미합니다. 철종은 강화도 유배 생활로 혼기를 놓친 상태였고, 후계 문제는 왕실과 안동 김 씨 모두에게 급박한 사안이었습니다.1년여의 심사숙고 끝에 선택된 왕비는 철인왕후.. 2026. 3. 12. 이전 1 2 3 4 ··· 6 다음